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월 항쟁 (문단 편집) == 기타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pressian/2008/10/17/60081016175711.jpg|width=100%]]}}}|| || 6.10 민주 항쟁을 상징하는 사진 '''아! 나의 조국'''[* 보도사진연감 1988년판에는 '''"쏘지 마시오"'''라는 제목으로 기재되어 있다.] || [[1987년]] [[6월 26일]]에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 [[남구(부산광역시)|남구]] [[문현동]]의 [[문현역|문현교차로]][* 문현교차로는 반 전두환 시위의 단골 장소여서 부산시민들끼리는 [[문현동]]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전포동]]을 두고 [[전두환|'''전'''두환]]도 '''포'''기한 '''동'''네라서 전포동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일대에서 개최되었던 "평화대행진" 행사 도중 한 시민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뛰어가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서 뛰어가는 시민이 누구였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뒤에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있는 시민 2명이 누구였는지는 [[한겨레]]에서 찾았지만, 웃옷을 벗고 뛰어가는 주인공은 많은 언론사들과 기자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했음에도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지하철 공사 중인 곳에 올라가 대기하고 있었던 [[한국일보]] [[고명진(기자)|고명진]] 사진기자가 촬영했으며, 훗날 '흔들리는 나의 조국'을 보았으며 셔터를 눌렀을 때 전율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평생의 [[특종]]이 될 것을 셔터 누르는 순간에 직감했다고. 이 사진은 1999년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보도사진에 선정되었다.[* 간혹 위 사진을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사진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광주 민주화 운동의 대표 사진으로는 [[:파일:518어린이.jpg|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유명하다.] 6월 항쟁 당시 친정부 어용, 왜곡언론이라는 이유로 '''[[경향신문]]''' 뭉치가 [[서울역]] 앞에서 화형당하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당시'''의 기준이다. 이후 신문사의 운영주체[* [[1981년]] [[전두환 정부]] 출범 이후 [[MBC]]와 분리되어 [[정수장학회]]에서 벗어나 [[문화체육관광부|문공부]] 감독 하의 [[사단법인]]으로 있었다. 민주화 이후 1990년부터 한국화약(現 [[한화그룹]])에 처분하면서 주식회사로 바뀌었고, 이후 IMF로 구조조정에 따라 독립, 현재의 경향신문이 된 것. 참고로 [[이승만 정부]] 때는 반정부 성향이라서 폐간 조치까지 당했었다.]가 바뀌면서 성향이 바뀐 사례. 6월 10일에 있었던 민정당 전당대회는 호헌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는 사실상 다음 대통령을 지명하는 자리였고, 이때 노태우가 지명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막간 공연을 하였던 곳이 [[MBC]]였다. 당시 MBC 소속 인기 코미디언 "배추" [[김병조]]는 원고에 쓰여있던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정당이고, 통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당'이란 문구를 그대로 읽었다. 이 표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하늘을 찔러서 그는 이후 사실상 연예인 생명이 끝장나게 된다. 이 당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필두로 한 여러 노래패들과 그들이 만든 민중가요가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사계(민중가요)|사계]], [[광야에서]], [[그 날이 오면#s-7.1]] 같은 곡은 지금도 유명하다. [[안치환]] 등의 가수는 6월 항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천안문 6.4 항쟁]]을 이끌었던 3대 학생운동 지도자 중 한 명인 [[우얼카이시 둬라이티]]는 [[6월 항쟁]]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87년 6월 [[중국 중앙 텔레비전]]에서는 서울[* 당시 표기상 한성(汉城, Hànchéng). 당시에는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자신들이 치를 아시안게임]]의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전 대회]]를 유치했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남한의 혼란상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혼합되어 있었다.]의 시위 모습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중계하듯 보도를 했는데 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http://www.dailian.co.kr/news/view/249920|#]] 당시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에서는 왜곡보도로 인해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직할시나 도청 소재지급 지방 대도시에서의 동조 시위 소문은 계속 들려왔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6.29 직전에는 '우리들도 뭔가 해야 되지 않느냐'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있었다"고 당시 지방 거주 고등학생들은 회상하고 있다. 이 당시 어린이로 있었던 1970년대 후반생이나 1980년대 초중반생들은 일부를 중심으로 '''화염병 투척하는 무서운 아저씨들'''이라는 인식이 쌓이기도 하였다. 또 그 당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절대로 화염병 던지는 무서운 아저씨들과 마주하지 말아라''', '''화염병 든 낯선 사람이 다가거나 위협하면 경찰에 신고해라''', '''절대로 화염병 가진 낯선 아저씨들 따라가면 안돼'''라며 주의를 주기도 하였는데 이 당시에는 민주 항쟁이라는 인식 대신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아이들 학교 등하교를 위협하는 시위라는 인식이 짙어서 당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알려주었던 편이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 그제서야 그 화염병을 던지던 아저씨들이 독재정권에 맞서싸웠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이들에게 6.10 민주항쟁에 대해서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분들의 운동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또 당시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서도 담임 선생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시위대들을 나쁜 사람들이라 칭하였을 정도로 그 당시 학교에서조차도 민주 항쟁 참가자들을 '''낯선 아저씨''', '''위험한 아저씨'''들이라며 학생들에게 접근하거나 다가가지 말라고 지도했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학교에 등하교하던 어린 국민학생들을 인질이나 볼모로 삼아 위협 등을 가할 수 있다는 인식이 짙어서 일선 학교에서도 국민학생들에게 이렇게 권고했던 편이었고 가정통신문을 통해서도 부모들에게 이러한 권고를 해주었던 편이었다. 당시 [[뉴스데스크]]나 [[KBS 뉴스 9]]등 정규 보도에서는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나 화염병이 터져 불타는 거리, 전경 부상자 등 시위의 폭력적인 모습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최루탄가스로 고통받는 시민들의 인터뷰도 '''왜 쏘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잦은 시위와 최루가스로 힘들다는 뉘앙스로 왜곡해서 보도했다. 시위 구호('''"독재타도 호헌철폐"''')는 묵음처리하거나 함성을 합성해 묻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줄곧 이런 모습으로 일관하던 언론이 [[6.29 선언]] 이후 태세전환해 새시대의 민주정신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실소가 절로 나올 것이다. 6월 항쟁 기간 중에도 코리아컵 축구대회가 취소되거나 프로야구 시즌이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여럿 있는데 상기한 대로 마산에서의 시위가 있고 부산에서도 6월 12일 한국과 미국간 축구경기 도중에 최루탄이 구덕축구장에 최루탄이 난사되어 30분간 경기가 중단되고 관중의 절반이 빠져나오면서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고, 6월 14일에 롯데와 해태가 열리는 와중에 대학생들이 구장앞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경기가 끝날때즈음에 경기장 안에서도 어김없이 독재타도 구호가 나오자 질겁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일이 벌어졌기도 했다. 6월 항쟁을 다룬 노래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유월의 노래'가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일어섰다 오직 맨주먹 >피눈물로 동지를 불렀다. >독재타도 민주쟁취 하나된 소리 >민주와 해방의 나라 이뤘다. >아 우리들의 수난 우리들의 투쟁 >우리들의 사랑 우리의 나라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손 맞잡은 우리 전진하는 우리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투쟁하는 우리 사랑하는 우리 >아 해방 통일의 우리 되살아오는 유월에 >아 해방 통일의 우리 되살아오는 유월에 >---- >'''유월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A9UDoeTyXCs|#듣기]] 당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차량은 경적을 울리고, 보행자는 손수건을 흔드는 식으로 연대를 표시했다. 서울과 부산, 대구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시내버스에 시위구호를 적기도 했다. 북한은 6월 민주항쟁을 "6월인민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남조선]] [[파쇼]]정권과 미제의 간섭과 침략을 물리치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항쟁"으로 왜곡하고 있다. 2023년 6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윤석열의 퇴진을 촉구하는 '민족민주 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단체로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6.10 기념식에 불참하였다. 야당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5348.html|#]] [[https://m.yonhapnewstv.co.kr/news/MYH20230611000200641|#]]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92102_36199.html|#]] 6월 10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매년 참석하고 행사를 주최하던 행정안전부가 보이콧을 하는 건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또 행정안전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특별감사하겠다고 예고하였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92102_36199.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